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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정 장학생 활동을 나름

 

(내 성격을 생각해보면 그러는 것도 쉽지 않았을 텐데 용케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연식도 좀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부담스러울 것 같아 약간 아쉽지만 그리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다.)

 

열심히 하며 남은 것은 가끔 안부인사를 나눌 수 있는 멋진 사람들이다.

 

그중 모임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데에 있어 개인적으로는 정말 큰 지지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께서 사정상 자신이 속해있던 관정 독서모임을 그만둘 수도 있는 상황이 되셔서

 

전체 공지로 대타(?)를 구하는 상황이 있었다.

 

사실 관정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역사가 꽤나 길었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일찍 일어나기 모임이라든지, 독서 모임이라든지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누군가에게 들은 소리지만

 

1. 소모임의 주제가 굉장하다. 2. 그런 소모임이 잘 유지되는 것이 더 굉장하다.라고 한다.)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해 해 볼까 고민하던 찰나도 몇 번 있었다.

 

물론 고민에 그칠뿐이었지만.

 

 

최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여러 방면으로 리프레시를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너무 기쁘고 감사한 일도 여럿 생기고, 자신감을 많이 회복했지만 뭔가 새로운 도전 또한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 기회가 생겼을 때는 아주 약간 망설이기는 했지만, 거의 바로 떡밥을 물었던 것 같다.

 

모임 자체가 상당히 폐쇄적이고 깐깐하게 운영되는 것을 보고 약간 놀랐지만,

 

(한 번 참여해보고 나니 기우였다. 다음에는 간식거리 하나 들고 가는 것으로 ㅎㅎ)

 

아무래도 나는 후발 주자의 입장이기에 여러 가지를 감안해야 하는 것도 있다.

 

책을 제대로 읽어본지가 꽤 되었기 때문에 물론 마음의 준비도 많이 필요했지만

 

한때 (좀 멀다) 책을 끼고 살았던 입장에서 다시 템포를 찾는 것 또한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튼 그렇다.

파리대왕 / 민음사 / 윌리엄 골딩

 

상당히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테마인 디스토피아/조난을 주제로 한다.

 

(모임에서 이 소설이 디스토피아 장르라기보다는, 디스토피아로 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충분히 동의.)

 

일단 읽으면서 아쉬웠던 부분을 먼저 나열하자면, 내가 민감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번역 말투가 상당히 거슬렸고

 

(특히 this나 we 같은, 한국어로 옮길 때 깔끔하게 생략이 가능한 부분들을 욱여넣은 느낌. 원문을 본 적은 없지만...)

 

섬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에 있어 어려운 한자어가 많이 등장해서 나중에는 그 부분은 거의 포기하고 읽은 정도.

 

꽤 오래된 영화가 있던데 보면 도움이 될라나?

 

다 읽고 나서 나무위키를 훑어보는데, 나랑 비슷한 느낌을 받은 사람이 몇 있다는 거에 안도했다.

 

혹시 독서 부족으로 독해력이 너무 떨어져서

 

다른 사람들이 별 상관하지 않는 부분을 나만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건가 싶었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굳이 여기다가 전체 줄거리를 정리할 필요는 없겠고, 인상 깊었던 주제만 몇 개 정리해 놓아야지.

 

 

파리대왕에서 작가는 노골적(?)으로 상징적인 사물을 여럿 등장시키는데,

 

그중에서도 소라라는 개념이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소라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대부분의 상징물들 (봉화, 오두막, 안경 등)이

 

소설 속에서 꼭 필요하고 대체 불가능한 실용적인 역할을 하는 반면 

 

(아무래도 공돌이 마인드?)

 

소라는 그 자체로는 아무 쓸모가 없고, 질서를 상징하는 일종의 약속과 가까운 역할을 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소라를 불어서 나는 소리로 회의를 소집하기는 하지만,

 

그런 장치는 소라가 갖고 있는 질서라는 개념을 재확인시켜주는 이벤트에 불과한 것 같다는 게 내 생각.

 

소라가 없으면 그냥 목으로 큰 소리를 내면 되니까.

 

 

이야기 초반에서 소라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모두의 암묵적인 합의를 통해 소라가 있는 사람만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약속이 그것이다.

 

소라가 권력이나 법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해보았는데,

 

필요하다면 누구든 소라를 받아 발언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권력과는 조금 거리가 있고

 

(사실 들고 있는 사람이 주기 싫은 내색을 하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실제로는 소라를 들고 있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들 비교적 자유롭게 말했으며

 

이에 대한 물리적 제재 등이 전혀 없었다는 점에서 법이랑도 약간 차이가 있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이런 소라를 통한 질서가 비교적 오래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이 소설이 독특한 점은 아주 어린아이들의 입장에서 여러 사건이 전개된다는 것인데

 

소설 초중반까지는 실제로 이득을 가져다주는 다른 존재들보다도

 

소라가 더욱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반적으로 어릴수록 즉각적이고 눈에 보이는 리턴이 있는 것을 선호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이 필요한 것 같다.

 

 

게으름을 부리다 보니 모임이 끝난 이후에 마저 작성하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의 의견들 중 흥미로웠던 것은 돼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다.

 

그중 특히 "돼지의 이름이 마지막까지 등장하지 않는다"라는 점이 기억에 강하게 남는데,

 

이름이라는 것이 단순한 상징을 넘어 공동체 내에서 개인의 자아를 상징한다고 생각했을 때

 

소년들의 생존에 은근한 기여를 한 돼지가 마지막까지 이름 없는 모습으로 떠나간 것은 생각할 부분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돼지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매력, 카리스마였다고 보는데

 

사실 TRPG 형식의 보드게임 (많이는 안 해봤지만)을 하다 보면 비슷한 능력치가 종종 등장한다.

 

저게 도대체 무슨 쓸모야 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파리대왕을 보면서 인간의 매력이란 무엇일까 하는 얕은 생각을 조금 하게 되었다.

 

소설 도입부만 봐도 돼지의 모습은 전형적인 안경잡이 뚱보처럼 그려지는데,

 

이후의 성격 묘사 등이 굳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저 인물이 소설 내에서 어떤 취급을 받을지 뻔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 취급 또한 다르지 않았고.

 

쉽게 말해 돼지라는 인물은 무인도라는 야생의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부족했고,

 

이에 온갖 수모를 겪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임에서 이런 얘기를 하니까 상당히 흥미로운 답변을 들었는데,

 

매력이라는 것이 이성적으로는 정의하기 힘든, 어떤 본능적인 끌림이라고 한다면

 

상대적으로 매력적인 사람 (랠프나 잭)을 리더로 뽑는 것은 본능적인 선택이 된다.

 

그런데 사실 리더를 뽑는다는 행위 자체는 이성적으로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행위이고,

 

이렇게 이성적인 행위를 가장 본능적인 발상으로 결정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재밌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실제로는 더 멋지게 말씀을 해주셨는데 기억 + 정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ㅎㅎ)

 

사실 무인도까지 가지 않고 주변만 봐도 많이 있는 일이고,

 

가깝게는 학급 반장, 모임장 등 소규모의 집단을 대표하는 사람에서부터

 

중요한 자리를 담당하는 정치인들까지, 본능적인 끌림으로 리더를 뽑는 과정이 적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지도자의 자질, 다른 인물이 지도자가 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얘기로 넘어갔는데,

 

돼지는 패스. 아무리 생각해도 리더의 상은 아니다.

 

그러면 소설에 등장하는 주된 인물은 아무래도 랠프와 잭이 되겠는데,

 

나는 두 인물 모두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랠프의 경우 지도자에게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질인

 

사람을 다루고 관리하며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특히나 이 부분에 있어서는 돼지가 랠프를 아득하게 웃돌고,

 

랠프의 결정적인 과실은 이런 돼지를 끝까지 자기 사람으로 만들지 못한 것이다.

 

(이름과도 연관되는 내용? 마지막까지 랠프는 돼지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

 

무인도라는 야생의 상황에서 사냥을 주도하며

 

짐승들을 잡아온 잭은 의외로 정상적인 지도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견도 나왔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작가가 여러모로 설계를 재밌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조난 계열의 장르에서 식량 확보는 굉장히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데,

 

파리대왕에서는 대충 과일을 따먹으며 생존하였다 같은 묘사가 상당히 많이 등장하여 의아했다.

 

쉽게 말해 잭으로 대표되는 사냥 대가 굳이 힘을 들여 멧돼지를 잡아올 필요는 없었다는 것인데

 

이러한 사냥 행위 때문에 많은 근본적 갈등이 유발되고 결국 공동체의 분열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잭은 전통적인 "힘"을 상징한다기보다는,

 

폭력과 무질서를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조금 더 깔끔한 생각인 것 같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이에 공감해주셔서 그 후의 얘기도 깔끔하게 흘러갔고.

 

 

이거 말고도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여러 관점으로 얘기를 했지만,

 

(더 정리하기에는 조금 귀찮다.

 

조금 잡설이지만 나는 많은 경우 전화보다는 텍스트 매체를 선호하는데,

 

요즘 들어 말로 하는게 훨씬 쉽고 간단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여럿 있다.)

 

일단 첫 번째 모임은 내가 생각했던 느낌으로 잘 마친 것 같다.

 

아무래도 다 좋은 분들이다 보니 다양한 의견에 대해 이를 수용하고 분석하는 능력,

 

필요하다면 적절한 반론을 제시하는 능력 등이 훌륭하셔서

 

편하게 맞출 수 있었다는 느낌.

 

바로 다음이 내가 준비해야 하는 차례라서 부담이 안된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눈치껏 잘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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